위/아래로 모두 ㄹㅇ 기쎈 인물들로 가득했던 조선의 왕후: 정현왕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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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왕후 윤씨는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의 3번째 왕후이자 자순대비라고도 불립니다. 1462년생으로 성종보다 5살이 더 어립니다.
정현왕후 윤씨는 파평 윤씨 출신으로 파평 윤씨에 속한 다른 왕후들은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2번째 왕후였으나 폐비가 된 폐비 윤씨 (제헌왕후 윤씨), 중종의 2번째 왕후였으나 산후병으로 사망한 장경왕후 윤씨, 중종의 3번째 왕후였으며 추후 여걸이자 악녀로 불리게 된 문정왕후 윤씨가 있습니다.
정현왕후 윤씨는 1473년에 숙의로 들어와 원래는 후궁인 숙의 윤씨였으며 원래 성종의 왕후로 책봉되었던 제헌왕후 윤씨가 1479년에 폐비가 되어 폐비 윤씨가 되고 곧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그 다음해인 1480년에 숙의에서 왕후로 새롭게 승격되었습니다. 정현왕후 윤씨는 왕후들 중 본명이 알려진 몇 안 되는 인물들에 속하며 본명은 '윤창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왕후가 된 후 친모를 잃은 세자 연산군의 의붓어머니가 되어 연산군을 친아들처럼 양육하였고 8년 뒤인 1488년에 조선의 11대 왕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을 출산하였습니다. 정현왕후는 자신의 소생 진성대군을 낳은 뒤에도 의붓아들 연산군을 차별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양육하였습니다. 따라서 연산군도 정현왕후가 자신의 친모인 줄 알고 자랐으며 성종이 승하하고 왕위에 오르고 나서야 정현왕후가 자신의 친모가 아니며 폐비 윤씨가 자신의 친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의붓아들 연산군은 1476년생으로 정현왕후 윤씨보다 14살이 더 어리며 친아들 진성대군(중종)은 1488년생으로 정현왕후 윤씨보다 26살이 더 어립니다.
정현왕후는 중종에게서 총 1남 3녀를 낳았는데 그 중에 차녀와 삼녀는 각각 2살 및 태어난 해에 요절하였습니다. 그 외에 장녀인 순숙공주는 1478년에 가장 먼저 태어났으나 결국 11살인 1488년에 병으로 사망하였고 나머지 1남이 진성대군이며 1488년에 태어나 19세인 1506년에 11대 임금 중종으로 즉위하였고 57세인 1544년까지 살고 승하하였습니다.
연산군이 즉위한 1494년 다음해인 1495년부터 정현왕후는 왕대비로 승격되었으며 연산군이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자 자신의 친아들인 진성대군을 다음 왕인 중종으로 올립니다. 왕대비로 승격된 후 정현왕후는 자순대비 명칭을 받았으며 69세인 1530년, 중종 중후반에 노환으로 사망합니다.
아래는 사극에서 정현왕후를 연기한 주요 인물들입니다.
: <왕과 나>에서는 핑클 이진이 연기하였으며 <역적: 백성을 훔진 도적>에서는 도지원이 연기하였습니다.
: <여인천하> 시기에서는 이보희가 연기하였으며 대비 시절이라 나이가 많기 때문에 더 할머니로 보이게 분장하였습니다.
정현왕후 윤씨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위로, 아래로 모두 기 쎈 왕실 인물들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위로는 시할머니 정희왕후, 시어머니 소혜왕후(인수대비)가 있었는데 두 왕후 모두 야망이 많고 기가 쎄기로 유명합니다.
아래로는 의붓아들 연산군, 며느리 경빈박씨 및 문정왕후가 있었는데 연산군은 알다시피 2개의 사화를 일으키고 신하들을 마구 죽인 폭군으로 유명하고 경빈박씨와 문정왕후 모두 야망이 많고 다른 왕후들과 달리 정치에 깊게 관여했습니다.
이렇게 위로, 아래로 모두 기쎈 주요 인물들이 가득한 가운데 그 가운데에 끼인 정현왕후 윤씨는 조용하면서 현명하게 처신하여 여러 왕실의 사건들 가운데서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여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할머니인 정희왕후 윤씨
시어머니인 소혜왕후 한씨 (인수대비)
의붓아들인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
며느리인 경빈 박씨
며느리인 문정왕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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