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평론가 시절 스타일로 자기영화 평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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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 (2000)
> “분단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 감독은 이 질문을 향해 나아가되, 결코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군복을 입은 청춘들은 선을 넘어 웃고 떠들지만, 그 선이 곧 피로 그어질 운명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작위와 진심 사이, 장르와 메시지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끝내 인간의 얼굴을 응시하게 만든다. 미장센은 간결하고, 감정선은 은밀히 침투해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총을 맞고도 침묵하는 우정'이라는 역설이 있다.”
한줄 평: 국경선 위에 잠시 피어난 우정, 그 비극의 온도가 너무나 인간적이다.
『올드보이』 (2003)
> “'복수'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층위를 가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서사의 기하학적 구조, 잔혹한 폭력의 미학화, 그리고 카메라의 감정 이입은 단순한 복수극 이상의 심연을 파고든다. 오대수라는 인물은 단지 희생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그는 관객 자신이며, 우리가 외면해온 죄의 집합체다. 문학적 사유와 장르적 쾌감이 정교하게 교배된 결과, ‘올드보이’는 하나의 문화현상이자 철학적 질문이 되었다.”
한줄 평: 누가 누구를 가뒀는가 — 그 대답은, 관객의 마음속에 있다.
『친절한 금자씨』 (2005)
> “복수는 결국, 악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악을 해명하는 과정임을 감독은 집요하게 설파한다. 금자라는 인물은 ‘선’도 ‘악’도 아니다. 그녀는 그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복합적 존재다. 분홍색 볼터치와 블랙 코트, 교회와 도살장, 용서와 처단. 이 극단들의 병치는 인물에 대한 함축이라기보다, 복수 자체의 내적 분열을 시각화한 전략이다. 복수란 행위가 지닌 카타르시스와 무력감을 동시에 구현한 보기 드문 성취.”
한줄 평: 금자는 친절하지 않았다 — 그녀는 단지, 정직했다.
『박쥐』 (2009)
> “종교와 욕망, 구속과 해방이라는 이율배반적 테마들이 흡혈귀라는 고전적 캐릭터를 통해 이토록 현대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니. 박찬욱의 미학은 도발이 아니라 해부다. 성직자가 흡혈귀가 되고, 사랑이 폭력이 되는 그 모든 순간에도 감독은 욕망의 윤리를 따진다. 김옥빈의 존재는 감각적이고 날것이며, 송강호는 자의식을 벗어던진 괴물이 되어간다. 구원 없는 신, 선 없는 믿음, 그리하여 영화는 죄의식 자체가 낳는 에로티시즘으로 귀결된다.”
한줄 평: 피를 마신 것은 몸이 아니라, 죄의식이었다.
『아가씨』 (2016)
> “사라 워터스의 원작을 식민지 조선이라는 배경에 이식하면서도, 원작이 품지 못한 정서적 디테일과 시각적 섬세함을 오히려 증식시켰다. 사기극의 서사는 영화의 뼈대일 뿐, 진짜 이야기는 계급과 성, 억압과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벌어진다. 여성 간 연대는 '파격'이 아니라 '당연함'으로 제시되고, 남성의 시선은 철저히 비껴난다. 우아함과 폭력, 관능과 해방이 하나의 호흡으로 엮인 이 영화는, 단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끝내 해방적이다.”
한줄 평: 이 시대 가장 정교한 '사기극'은, 결국 여성만이 완성할 수 있었다.
『헤어질 결심』 (2022)
>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언어의 외피가 아닌 시선과 거리감으로 말하려 한다. 형사와 용의자의 관계는 불안정하게 교차하며, 모든 대사는 반쯤 감춰져 있고, 감정은 산의 안개처럼 밀려온다. 박해일의 내면적 연기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탕웨이의 언어는 물처럼 흘러가며 그 바위를 휘감는다. 사랑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하는 것이다 — 그것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결론이다. 비극이면서도, 무척 우아한 종결.”
한줄 평: 사랑의 본질은 ‘머무름’이 아니라, ‘결심하고 떠남’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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