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썰만화 보고 써보는 내 가위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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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썰만화라며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누나 만화를 보니
문득 내가 가위눌린 경험이 떠올라 글을 써본다.
난 태어나서 가위를 딱 두 번 눌려봤다.
그중 한번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유독 그날따라 집에 한기가 돌고 으스스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 눌렸지 않았나 싶다.
근데 그 가위는 딱히 귀신이 나온 것도 아니고
한 5초만에 깬 별거 아닌 가위였다.
문제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첫 가위인데..
때는 내가 대학생 시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지
사건은 정말 불현듯 발생했다.
어느날 엄마를 통해 전해들은 사촌형의 실종 소식
온 가족이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일주일 뒤 흐느끼는 사촌누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형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사촌형은 외갓집의 장손이자 종손이었고
당시 잘나가는 프리랜서였다.
건축 계열 업으로 해외출장도 잦았고
젊은 나이에 수도권에 자가도 있었으며
얼굴도 곱상하여 인기가 아주 많았다.
난 그런 형의 유일한 혈육관계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일한 상주로써 형의 사망소식을 접하자마자
급하게 빈소로 향하였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웠던 자식의 죽음이란
감히 말하건데 보통의 자식 앞세운 상갓집과는
공기의 무게부터 달랐다.
외숙모의 절규는 이미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고
상 이틀째에 결국 외숙모는 각혈을 하셨다.
외삼촌도 무덤덤하시던 모습은 어디가고
조문객이 잇다르자 결국 오열을 하셨다.
처음 해보는 상주였고
말했듯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웠던 형이니만큼
끊이지 않는 조문객에 정말 정말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당시 형의 실종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되었고
지금도 검색을 해보면 그때의 자료가 수두룩하니
당시 초상집엔 기자들과 형사들도 수시로 찾아왔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형의 유골을 안치하자마자 밥도 못먹고 본가로 돌아갔으며
집에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잠만 잤다.
그리고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내가 다니던 학교로 향했고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 도착하자마 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기절하다시피 쓰러졌다.
그리고 가위는 그때 눌렸다.
가위의 내용은 단순했다.
꿈에 죽은 사촌형이 나왔고
옆엔 처음보는 할머니가 계셨다.
형은 죽기 전 모습 그대로였고
할머니는 흰 머리에 비녀를 꽂고 흰 소복을 입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맥락도 서사도 없이 내 눈 앞에 나타났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런데 상황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무말없이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던 할머니는
갑자기 내 팔을 낚아챘다.
분명 꿈이었던걸 알았는데,
달리 말하면 자각몽이었는데도
난 그 둘에게 끌려가선 안된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난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꿈속에서 느껴지길 수십분을 저항하며 소리를 지르다
난 마침 기숙사로 돌아온 룸메에 의해 가위에서 깰 수 있었다.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고 온 몸엔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기숙사 방 창문으론 늦은 오후의 햇살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비쳐들어오고 있었으며
가을바람에 커튼은 휘날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가위를 눌리기 전 까지만 해도
귀신따윈 믿지 않았으며
친구들에게도 으레 "난 양기가 쎄서 재채기만 해도 퇴마 가능함ㅋ"
라며 우스갯 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근데 그 일이 있고나서 이 가위는 뭔가 심상치 않다고 여겨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동기에게 술한잔 사주며 이야기를 했다.
"혹시 너도 상치를때 그랬냐?"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혹시 장례식장에서 뭐 챙겨왔냐?"
나는 그 말을 듣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장례식장에 가보긴 커녕 장례문화도 몰랐던 나는
죽은 형을 기억하겠답시고 상주 완장과 국화 브로치
그리고 형의 유골함에 붙이고 남은 스티커를 챙겨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스티커는 유골함에 생/사 이름을 붙이고 남은 부분으로
쉽게 망자의 생일 사망일 이름이 음각으로 적힌 스티커라고 보면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이걸 스마트폰 뒷면에 붙였으니..
아무튼 이 얘기를 사실대로하니 친구는 어이없어하며
당장 그것들 태워버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연 지체할 것 없이
나는 그날 새벽 술기운에 약간 알딸딸 하며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그것들을 흡연실 옆에 쪼그려앉아 태워버렸다.
그 뒤로 형은 꿈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가위 사건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금 글로 쓰려하니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은 기묘한 미신적인 일이다.
일종의 후기를 남기자면..
외할머니께선 형이 떠난 이후 우리 손주 어딨냐며 계속 찾으셨고
그때마다 모든 가족들은 형이 해외에 있다고 둘러댔어야만 했다
외삼촌은 얼마 안가 암 검진을 받으셨고 현재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기신 시골집에서 항암치료에 전념하고 계신다
사촌누나는 몇 년 전 무당이 되었는데, 외삼촌 외숙모께는
아직 얘기를 안한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나서 약간 비몽사몽하며 쓴 글인데
다른 개붕이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아무튼 이렇게 글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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